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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언터쳐블 Intouchables Untouchable 2011




 주말에 겨우 쉴 수 있는 어른이들은 가끔 감정의 메마름 때문에 슬픈 잠자리에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 드라마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 안에 인물들은 때론 

일상과는 다르게 감정이 겪하게 살하 숨쉬는 그것을 보기를 원한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마음을

잘 헤아려 만들어진 영화다.


 프랑스의 남부 흑인들은 위험하다는 선입견을 바탕으로 본다면, 자신의 수족으로서 움직이는

드리스는 굉장히 파격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필립의 선택이 더욱 잘 이해 되는 부분이다.

인간적인 부분에서 만나길 원했던 필립과 그런 그를 꾸밈없이 대하고 때론 친구로서 그를 받아들이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깊다. 그들은 친구이상의 우정을 나누지 않는가? 

 모든이가 필립을 보살펴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아왔다면, 그를 돌보고 돈을 받아내는 수단으로 보았다면

드리스는 그를 인간으로 자신이 돕고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서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 바로 그가

그와 함께 생활하게 된 이유가 아니겠는가?


 필립이 문화적이던, 예술적이건, 사회적이든, 심지어 옷의 스타일까지 Classic한 반면 

일반적인 의미에서 평범한 드리스의 만남은 그런 둘의 반대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 둘이 친구로서 

나아가는 밑걸음이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영화의 이야기가 성립되며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1%의 우정'이란 부제가 왠지 우스꽝스러우며, 조금은 말이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곰곰히 생각해보자. 관통하는 줄거리와 생각거리는 바로 둘의 인간적 교류에서 비롯되는 것이아니던가.

왜 1%의 우정이라고 하였을까? 또 왜 Untouchable인가.


 언터쳐블의 사전적 의미는 '당해낼 수 없는', 글자 그대로는 '손 댈 수 없는'이다.  

 유쾌한 드리스의 장난과 조크에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활의 Classic한 필립이나

또는 몸을 움직이게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만드는 드리스의 인각적 매력에 반한

필립의 상활을 반의어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아마 후자 쪽에 가깝지 않을까하는 것이 나의 견해다.


 

 영화는 보는 내내 드리스의 유머와 필립의 당하는 모습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어찌되었건 웃고 감동 받았을 때 느끼는 희열을 받는 것을 뭐라 더 수사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