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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더 그레이 The Gray 2012




 <포스터에 대한 언>

 많은 영화들이 어디에 초점을 두고 포스터를 만드느냐에 따라 국내 국외의 모습이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이 영화는 많은 리뷰어들이나 평론가, 기자들이 말하듯

'늑대와 인간의 싸움'이라는 엉터리 모습을 초점을 두었을 때 리암 니슨의 도전적인

모습의 포스터가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늑대에게 공격당하며 의지와

희망을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을 때 바로 위에 포스터가 좀 더 깊이 와닿게 

된다.



 <두려움의 근원>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고 스스로의 길을 포기하려던 오트웨이는

아버지의 시를 읇조리며 다시 일어선다. 그 계기가 바로 늑대의 울부짖음이었다.

영화내내 들리는 울음소리는 모두 비슷하게 들리지만, 그것 자체가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대사이다. 


 <늑대란 이름으로 나타난 두려움>

 다큐를 많이 본 티를 내며 그것을 인용하던 이는 다큐 속 다큐를 만나게 된다.

아이러니하다. 다큐속의 늑대란 인간에게는 그저 관찰에 대상이며, 멸종 대상일

뿐이잖은가? 그러나 그들과 맞서고 도망치는 대상이 될 때는 그저 원시를 거닐던

원숭이과의 도구를 쓰는 동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그 속에서 진정한 두려움을 깨닫게 해준다. 현대에서 행동학은 인간의 행동이

공격이거나 방어 혹은 감정의 표출의 집합임을 말해준다. 이 행동학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 대 인간에서 나타나는 가식 된 모습이 아닌 사냥을

당하거나 도망가야하는 모양이 된다. 

 그야말로 현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내내 늑대에 대항하여 처절히 싸우는 인간을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고대인들이 그러했듯 철학의 근원으로 돌아가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여기서 늑대는 다만 철학의 생각을 사유하게 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 현실이던가>

 영화는 끊임없이 인간을 싸우게끔 유도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한다.

그 속에서 인간은 의지를 갖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어이없게 죽어나가기도 한다.

포기하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 나아가기도 하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늑대와 인간의 싸움이 아닌 늑대가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장면이 자주나온다.

 그리고 여기서 현실은 오트웨이의 말과는 다르게 폐를 차갑게 얼리며, 살갗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그 장소가 현실이 아닌 스스로와 끊임없이 대치하며 길을 나아가게 하는

그것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Live and Die on this day>

 Once more into the fray

 To the last good fight I'll ever know

 Live and die on this day

 Live and die on this day


 <방향은 없다, 다만 나아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