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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영화

히어애프터 Hearafter 2010




 <들어가기 전에>

 누군가 책에서 이런말을 하는 걸 꽤 재밌게 기억하고 있는 글귀가 하나 있다.

 "시작에서 많은 망설임을 가진 이의 결단은 그 길의 끝을 보게 하는 결단이다."

 이런 뜻이었는데, 한 마디로 나와 같이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생각이 많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이들의 멋진 대변일 것이다. 내가 인정하면 술꾼이 술이 좋다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래도 저 말은 맞는 말이다(웃음)


 그렇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많은 긍정요인이 필요했다. 우선 내 가족사에서 죽음이란

거대 사건이 끼어들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맷 데이먼의 연기자로서의 필모그래피적 신뢰였다.


 그럼 부정 요인은 뭐냐고? 촌스런 포스터.




 <여기 이후>

 삶의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곳이 있다고

그들의 안식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제이슨이 동생 조지를 도와주듯, 죽은이를 본 후 신념을 굳게 가지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는 마리도 그렇듯. 


<영매로서의 삶>

 살짝 다른 이야기지만, 예언자로써의 삶을 다룬 이영도작의 '그림자자국'

이나 과거와 미래를 보는 스티브 호킹 작 '데드 존'도 그러한 특수로운 

삶의 깊이를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이들을 그리듯이 남들과 다르다고

기뻐할 일이 가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일에 대해서 스스로가 존재하고 이루고자

할 때 진정한 행복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물론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명확히 자신의 재능을 통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

 가깝게 할머니를 잃은 나에겐 그녀의 죽음이 참으로 애처롭게 여겨졌다.

누구에게나 있을 장광한 가족사를 여기서 이야기 할 수는 없다만, 그런 역사에서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슬프고 고독하게 느껴졌다. 그 속에서 나는 어리석게도 

장례라는 것에 경험에 큰 슬픔을 느끼지는 못하였다. 

 처음 치뤄낸 장례이었지만, 세상을 떠난 이의 몸을 만져보고, 슬픔을 나누고 그녀를 떠나보내고

얻은 평범한 삶의 모습은 참으로 당연시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형을 잃고 방황하는 동생처럼, 아기를 잃고 잠시만이라도 말하고 싶다던 그

부인처럼, 죽은 아내를 만나고자 했던 남편처럼, 그 어떤 슬픔의 깊이가 존재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싫게 느껴졌다. 소중한 이의 죽음 앞에서 그들은 이성이 이끄는 과학을

쫓는 이들이 아니라 평소엔 허상시 하던 그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그들이잖는가.


<사람은 누구나 슬픔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가며 마주편에 앉아 있던 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들도 

가족이 있고, 삶이 있으며, 온갖 기쁨, 슬픔, 아픔, 희망, 사람을 느끼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겠구나, 저들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구나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에

눈물이 난적이 있다.

 

 그것은 깨달음과 슬픔의 눈물이었다. 저들은 모든 감정과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양탄자를

짜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어떻게 무시하겠는가. 음식점 직원의 서빙이라도, 

편의점 직원의 사소한 계산이라도, 나를 좋은 아르바이트자리로 인도해주는 사람이라도 모두

개인으로서 존중을 받아야 할, 하나의 삶을 꾸려나가는 인간으로서 그들의 사소한 도움이라도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함에 고마움을 감사함을 표해야하는 것이 맞지않을까. 하고 

어느 날 선배의 "모든 것에 고마움을 표할 필요는 없어"라는 말에 대해 많은 사색을 한 신념의

형성이었다.


 그래서 사람은 천혀 독립적이지 않으며 복잡한 실타래처럼 엮여있다 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더 나아가 그들은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고 있고, 하나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은 새로운 삶을 생각하게 한다>

Charles Dickens2.jpg



 <죽은자는 정말 산자를 지켜주는 걸가>

 나는 이 질문에 강한 긍정을 표하고 싶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지켜주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조상들이

나를 올바르고 참 된 길로 인도하기 위해 애쓰신다고 생각했다. 재밌잖은가? 겨우 7살

짜리 꼬마였던 적 했던 제사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여주인공이쓴 히어애프터를 어떻게 볼것인가?>

 아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사람의 물리적 나이로는

가장 죽음과 근접한 나이를 살아가는 이의,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만났을 수많은

이별속에서 사색한 결과가 아닐까. 다만 그의 왕성한 활동은 그가 회춘했다고

믿게 만들지만 말이다(웃음)


<왜 찰스 디킨스인가>

이스트우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일까? 그에게서 위안을 얻은 일이 있었을까?


<클린트의 영화장면>

-유머코드

 소년이 조지에게 전화해 마리가 어디 묵고 있는지 알려줄때 참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장면>

-요리교습에서의 시식장면

 눈을 가린채 그 사람의 음성과 미각으로 이루어지는 달콤함이 어떨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참 스윗Sweet하다.

<잡다한 생각>

-여주인공의 자연스런 주름이 참 아름다웠다. 전형적인 프랑스 여자였는데 그 나라 사람은 다 예쁜가? 요즘 

 프랑스 미인들이 참 어여쁘다는 생각이 많이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볼 때마다 푸근하다.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고 어릴 적 느꼈던 할머니의 정, 가족의 정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죽음 이후를 보는가의 진위여부는 상관없다. 잔잔해서 더 좋았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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